일요일의 역사가
🔖 『바카이』는 그리스 세계의 위대성을 말하지 않는다. 이 복잡한 극은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그의 극에서는 신앙과 회의, 이성과 비합리성, 그리스와 외국, 남성과 여성, 문명과 야만 같은 대립적인 힘들이 명확하게 양분되지 않다가 어느새 합쳐져 카오스로 회귀한다. 에우리피데스는 누구도 묻지 않고 보려 하지 않았던 우리 내면의 어둠, 모순에 가득 찬 문명의 하층, 미분리의 혼돈과 불확실성이 그득한 세계로 우리를 이 끌고 가서 공포에 찬 체험을 하도록 만든다.
여느 다른 고대 문명과도 구분되는 그리스 문명의 특질은 우리가 누구이며, 이 우주는 어떻게 돌아가며, 국가와 사회는 어떻 게 운영되어야 마땅한지를 캐묻는 데에 있다. 그렇게 묻고 답을 구하는 방식으로 하나씩 쌓아 올려 만들어낸 그 문명은 이제 어디에 와 있는가? 기원전 5세기 말, 그리스 제계가 전성기를 지나 쇠막의 길로 접어들 무렵, 작가들은 또다시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는 노을처럼 쇠락기의 문화가 발하는 찬란한 빛은 때로 두려운 정도로 아름답다. 그것은 시대를 넘어 오늘에까지 영감의 빛을 비추고 있다.
🔖 거시사는 세계의 큰 흐름을 짚어주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망원경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 세상을 다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의 삶은 통계분석과 거대서사 속에 편입될 정도로 기계적이지 않으며, 이 세상은 법칙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불확실하다. (...) 그러니 차라리 생각을 바꿔 우리가 바라보는 역사의 틀을 확 좁혀서 정밀하게 읽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누이의 수틀을 보듯 그렇게 앵글을 좁히고 보면 거기에 또 다른 종류의 미세한 우주가 나타난다. 이제 하나의 작은 사건, 괴팍한 한 인간, 조그마한 어느 마을처럼 복합적이고 다면적이고도 심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 떠오를 것이다.